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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감문과 김천
민경탁(경북대 평생교육원 외래강사)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 입력 : 2017년 01월 19일(목)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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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신라가 건국된 지 288년 되던 해이다. 조분왕 2년(231) 7월에 석탈해의 후손, 대장군 석우로(昔于老)가 감문국(甘文國)을 섬멸하여 감문군(甘文郡)으로 삼았다. 석우로는 감문국의 존재를 문헌에 명확히 알린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중국에서 제갈공명이 출사표를 올리고 위 나라를 칠(227) 즈음이다. 왜적 격퇴에 공적이 많았던 석우로는 첨해왕 때에 상주지방의 소국인 사량벌국(사벌국)이 배반하여 백제로 투항하므로 가서 토멸하기까지 하였다.

 석우로는 일본 사신이 관사에 와 있을 때 농담삼아 “조만간 너의 국왕을 염전의 노비로 만들고, 너의 왕비는 부엌데기로 만들겠다”고 했다. 왜왕이 이 말을 듣고 노하여 공격하였다. 우로가 왕에게 말하였다. “지금의 환란은 제가 말을 조심하지 않은 데서 비롯한 것이니, 제가 감당을 하겠습니다.” 우로는 마침내 왜군에게 가서 “전날 한 말은 농담일 뿐이었는데, 어찌 이렇게 군사를 일으킬 줄로 뜻하였으랴” 하였다. 왜인은 답하지 않고 그를 붙잡아 장작을 쌓아 그 위에 얹어놓고 불태워 죽이고 나서 가 버렸다. ‘삼국사기’ 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 뒤 미추왕 때에 왜국의 대신이 예방하였다. 우로의 아내는 국왕에게 부탁해 왜의 사신을 사사로이 접대하게 되었다. 그가 흠뻑 취하자 장사를 시켜 뜰에 끌어내려 불태워 지난날의 원수를 갚았다. 왜인들이 분하게 여겨 몰려와 경주를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일본‘서기’에는 우로 아내의 복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나온다. 우로의 아내는, 남편이 매장된 곳을 알고 있는 왜인에게 접근해 말했다. “그대가 우로의 시신이 묻혀 있는 곳을 말해 준다면 반드시 후하게 사례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대의 아내가 되겠습니다.” 그녀는 증오를 감추고 왜인에게 몸을 허락했다. 왜인은 시신이 묻혀 있는 곳을 몰래 가르쳐 주고 말았다. 즉석에서 우로의 아내는 나랏사람과 협의하여 왜인을 죽이고 시신을 찾아내어 다른 곳에 장사하였다고 전한다.

 김천의 역사를 잠시 돌아본다. 삼한시대 김천지역에는 감로국(甘露國), 주조마국을 위시해 어모국, 문무국, 배산국(조마 장암) 등의 부족국가가 있었다고 한다. 중국의 역사서 ‘후한서’와 ‘위지’ 동이전에 나오는 감로국을 감문국으로 비정함은 통설이다. 석우로의 정복 이후 감로란 이름은 사라지고 감문은 여러 역사서에 등장하며, 주조마국은 신라 진흥왕 23년(562) 이사부가 대가야를 토멸할 때 신라에 함께 병합된 이후 역사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감문군은 진흥왕 18년(557)에 감문주(甘文州)로 승격되면서 백제와의 접경지로서 전략적으로 중요해졌다. 진흥왕 22년(561) 2월 신라가 비사벌(창녕)에서 군신 회의를 개최했는데 감문군주(甘文軍主)가 참석했다고 창녕 신라진흥왕 척경비는 전한다. 군주(軍主)는 중앙정부에서 파견한 지방관. 지증왕 2년(577) 10월에 백제가 신라의 서부를 침공해 오자 주치지(州治地:도청 소재지)를 사벌주에서 감문주로 바꿨다. 이후 반세기 넘게 감문주는 신라 군사 ․ 행정의 거점 역할을 해왔다.

 백제가 멸망한 후 신라진평왕 36년(661)에 감문주는 다시 감문군으로 격하되었다가 경덕왕 때 전국에 9주(州)를 둘 때 개령군으로 바뀌어, 직속으로 김산현․지례현․어모현을 두었다. 이 지역의 거점이었던 김산현은 조선 태종 16년(1416)에 어모현과 통합되어 김산군이 되었다가 1949년 8월 그 때까지의 김천부가 김천시로 탄생하게 된다.
 김천의 감문이란 지명은 어디에서 연유했을까.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유득공(1749 ~ ? )은 전국의 이름난 옛 도읍지를 답사하며 감문국을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다.
 
 장부인 가고 들꽃 향기로 남고
 묻히다 만 비석은 예의 김효왕 것
 서른 명의 군사 크게 일으켜
 달팽이 뿔 위에서 천 번 싸웠다네
 
 유득공의 ‘이십일도 회고시’에 나오는 시이다. 장부인(獐夫人)은 감문국 왕비로 추정되는데 그 능(陵)이 개령면 동부리에 있다. ‘서른 명의 군사’라니 당시의 부족국가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수 년 전 감문면 문무리(文武里)에서 270여 기의 고분군이 집중적으로 발굴되었다. 무수한 고인돌과 성곽이 발견되었다. 문무리에서 구야리에 이르는 내(川)가 감문천(甘文川)이다. 감문천은 어모면 다남리에서 아천(牙川)과 합류하며, 아천은 개령 황계리에서 감천으로 유입한다. 개령 동부리에 감문산, 감문산성, 궁궐터, 봉황대 터, 취적봉, 장부인릉, 계림사 등의 감문국 유적이 즐비하다. 감문면 송북리에는 속문산성과 오성마을엔 말무덤으로 불리는 큰 무덤이 있는데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이를“감문국 김효왕릉”이라 하고 있다.

 감문의 중요 하천으로 송북리에서 태촌 3리(배시내)로 흘러 감천과 합류, 낙동강으로 흐르는 외현천이 있다. 외현천 기점에 속문산성이 있으며 천변에는 넓은 들이 많다. 감문천 ․ 아천 ․ 외현천은 감천에 비해 범람이 적어 천렵과 농작, 거주가 용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하천들은 물류 운송과 교통을 위한 수운(水運)으로서 낙동강과 내륙을 매어 합쳐주는 역할을 해왔다. 세 하천이 에워 싼, 감천과 문무리를 주축으로 한 일대의 구릉과 평지는 농작과 천렵이 평이했을 것이다. 신라가 백제와 대가야를 견제하기 위한 전략 지역, 공략하기 위한 전초기지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형성된 나라가 감문국이다. 감문국은 감문산성과 고소산성(문무리), 속문산성을 주축으로 한 읍성국가였다. 감문은 감천과 문무리에서 연유한 지명이다.

 감문국의 역사를 증명하는 문화재가 하나 더 있다. 개령의 빗내농악이다. 감문국의 한 부락이었던 개령 광천리 횡천(橫川)의 자연부락명이 빗내다. 감천이 가로로 비켜 흐르는 이 마을은 저지대라 홍수로 인한 수해가 빈번하였다. 빗내농악은 자연재해에서 벗어나 마을의 안녕을 위해 생긴 빗신(神)굿, 풍년제인 나랏제, 동제(洞祭)로 탄생하여 전해오다가 군사굿인 진(陳)굿 형태로 발전, 전승되고 있다. 한국의 농악은 대부분 농사굿인데, 빗내농악은 군사굿이다. 감문국의 군사조련에서 연유했다고 한다. 감문국의 역사가 깃든 민속악으로서, 별신제로서 독특한 굿판을 이루어 경북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돼 전한다.

 우리나라에 감천과 감문이란 지명은 여러 곳에 있다. 김천의 감문은 김천 역사의 뿌리가 깊이 박힌 고장이다. 지금의 감문면과 개령면 동․서부리를 중심으로 예의 감문국이 있었다. 감문 문무리의 고분군, 고소산성과 속문리 산성, 개령 동부리의 감문산, 감문산성, 궁궐터, 당고산, 취적봉, 장부인릉, 계림사 등은 이를 증명하는 문화유적들이다. 지난해 김천에서 연극 ‘감문아리랑’을 탄생시키더니 올해에 뮤지컬 ‘감문별곡’을 무대에 올린 것은 김천의 역사를 담은 문화예술콘텐츠 개화라 할 수 있다. 감문은 김천 역사의 시원지이다.
김천신문 기자  kimche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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